원장 육아칼럼
아이 상담은 부모상담과 더불어..
초등학교 2학년인 민수(가명)는 ‘엄마 말을 너무 안 듣는다’는 것을 주문제로 엄마와 함께 진료실을 방문했다.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는 흔히 있고, 이러한 문제만으로 전문가를 찾아오는 일은 드물기에, 숨어 있는 다른 이유를 탐색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민수는 어려서부터 산만한 편이라서 엄마로부터 자주 지적을 당하고 또 야단도 많이 맞으면서 자라왔다. 엄마는 처음에는 민수가 참 다루기 힘든 아이라고 말하면서 평소에도 부산하고, 자기 물건을 챙기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정서 불안에 자신감 상실까지 더욱 문제가 커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럴수록 아이 문제를 좀 차분하게 바라보고 도와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치료자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민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실 얼마 전까진 산만한 것이 병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민수 엄마는 많이 우울해진 상태였으며 그런 중에 자연 아이 행동도 실제 이상으로 힘들게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그러다 보니 더욱 짜증이 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어 아이에게 지나칠 정도로 야단을 치거나 체벌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결국 자신이 문제라는 표현을 하였다.
사실 주의력 결핍증은 부모에게 원인이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이의 타고난 특성, 보다 자세히 표현하면 아이의 선천적 뇌 기능의 특성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만 책임을 묻고 모든 잘못을 아이에게 돌릴 수만은 없다.
상담을 하러 왔을 때 문제의 원인이나 증상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동안 마치 엄마 말만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아이가 주의를 줄 때는 알아듣고 이해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의 특징임을 부모가 이해하면 일단 마음이 덜 조급해지고 화가 덜 나게 마련이다. 좀더 아이를 제대로 도와 주고 치료해 줄 수 있는 기틀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엄마 자신이 아이와 상관없는, 자신의 문제 혹은 어른들 문제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많거나 불안, 우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비단 주의력결핍 자녀를 둔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든 부모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필자가 얼마 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바람직한 부모상으로 아빠는 ‘시간 많이 내주고 잘 놀아 주는 아빠’를, 엄마는 ‘감정 조절 잘 하는 엄마’를 각각 1위로 꼽은 것을 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모두 성인 정신과 전문의이다. 즉 전문의 자격이 두 개다. 그러므로 아이 문제로 상담을 하러 왔지만 아이보다 오히려 엄마 자신의 상담과, 부모교육을 통해서 훨씬 더 큰 도움을 받는 일이 흔하다. 즉 능력 있는 전문가는 문제의 핵심과 상담이나 치료의 주 대상이 누구인지를 처음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치료를 시작한 경우 엄마 자신이 편해지고 안정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도 좋아지며, 궁극적으로 모자 관계를 포함하여 가족 관계 전체가 좋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곤 한다.
신지용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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